같은 기술, 두 개의 결론
첨단 패키징 로드맵을 추적하면서 하이브리드 본딩을 'HBM의 다음 승부처'로 다뤘습니다. 그런데 같은 이름의 기술이 법정에서는 "범행 당시 고시된 첨단기술이 아니다"라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기술의 중요도와 법의 보호 목록이 항상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이번 판결이 남긴 질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판결이 보여준 것 — 유죄와 무죄의 경계선
SK하이닉스 중국 판매법인 상하이사무소 주재원이던 A씨는 2022년 화웨이 반도체 자회사 하이실리콘으로 이직을 추진하면서 회사 기술자료를 반출했습니다. 2022년 2~3월 8차례에 걸쳐 이미지센서(CIS) 관련 영업비밀 자료 8개·186장을 출력했습니다. 업무용 노트북의 기술자료를 사진으로 촬영한 것도 조사됐습니다. 1심(2025년 10월)과 2심(2026년 8월 항소 기각)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2026년 8월 13일 상고를 기각해 형을 확정했고, 9월 1일 보도됐습니다. 눈여겨볼 부분은 유죄와 무죄의 경계선입니다. 영업비밀 국외누설(부정경쟁방지법) 등은 유죄로 인정돼 실형이 확정됐습니다. 반면 유출 자료 중 하이브리드 본딩 관련 부분의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은 1·2심의 무죄 판단이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법원은 해당 자료가 범행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고시 '첨단기술 및 제품의 범위'에서 규정하는 첨단기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확인서가 있어도 소급되지 않는다
보도에 따르면 범행 이듬해인 2023년 2월 산업부가 이 기술에 첨단기술 확인서를 발급했습니다. 그래도 법원은 "범행 당시 적용되는 고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범행 이후 발급된 확인서만으로는 범행 당시의 법적 보호가 인정되지 않은 것입니다. 기술의 법적 지위는 시점과 목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은 법 개정이나 고시 등재를 기다리기보다 내부 비밀관리 체계를 1차 방어선으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이 판결의 실무적 함의입니다.
두 개의 그물 — 산업기술보호법 vs 부정경쟁방지법
산업기술보호법의 '산업기술'은 목록입니다. 법 제2조 제1호는 산업기술을 "법령에 따라 행정기관이 지정·고시·공고·인증한 기술"로 정의하고, 각 목에 그 유형을 열거합니다. 국가핵심기술, 산업발전법 제5조에 따라 고시된 첨단기술, 산업기술혁신촉진법상 신기술, 핵심뿌리기술, 소부장 핵심전략기술 등입니다. 이번 사건 보도에 산업발전법 고시가 등장하는 배경도 이 구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검찰이 주장한 유형이 '첨단기술'이었고, 법원은 범행 당시 그 고시 범위 밖이라고 본 것입니다. 첨단기술은 산업기술이 되는 여러 법정 경로 중 하나입니다. 한 유형에 해당하지 않아도 다른 유형에 해당하는지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어느 유형에도 해당하지 않을 때 비로소 이 법의 그물 밖이 됩니다. 반면 부정경쟁방지법의 '영업비밀'은 요건입니다.
목록이 아니라 ① 공공연히 알려지지 않았고 ② 독립된 경제적 가치가 있으며 ③ 비밀로 관리됐다는 세 요건을 충족하면 보호됩니다. 이번 사건에서 하이브리드 본딩 자료가 산업기술로 인정받지 못한 부분도 영업비밀 침해로는 처벌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문서 등급 관리·접근 통제 같은 '비밀관리성' 입증 체계가 사실상 마지막 안전망이라는 뜻이 됩니다.
관련 근거: [15] 국가법령정보센터 — 산업기술보호지침 제2조 (2026-06-30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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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핵심기술'은 지금 몇 개인가
산업기술 중에서도 가장 강하게 보호되는 층이 국가핵심기술입니다. 산업통상부 고시 개정(2025년 10월 2일 시행)으로 현재 13개 분야 79개 기술이 지정돼 있습니다. 반도체 분야에는 30나노 이하 D램 설계·공정, 'D램에 해당되는 적층조립기술 및 검사기술', 낸드 적층조립·검사, 파운드리 공정 등이 올라 있습니다. '시스템반도체용 첨단 패키지(FO-WLP·FO-PLP 등) 조립·검사 기술'도 여기 있습니다.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어떤 기술명이 목록에 그대로 적혀 있지 않다고 해서 보호 범위 밖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항목은 기술군 단위로 규정되므로, 구체적인 기술 내용을 고시의 범위 문구와 대조해 판단해야 합니다. 이번 판결도 '하이브리드 본딩'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해당 자료가 범행 당시 고시 범위에 드는지를 따진 것입니다. 고시는 계속 개정됩니다. 2024년 2월 산업기술보호위원회는 31개 기술 정비를 의결했습니다. 그래서 최신 고시 원문 확인이 원칙입니다. 국가핵심기술 보유기관에는 의무도 따릅니다. 보호구역 설정·인력 관리 등 보호조치를 이행해야 하고, 해당 기술의 수출과 해외 인수·합병은 정부의 승인 또는 신고 대상입니다.
2025년 개정 — 그물 안쪽은 촘촘해졌다
2024년 12월 국회를 통과해 2025년 7월 22일 시행된 개정법은 처벌과 예방을 모두 강화했습니다. 국가핵심기술 해외유출(제36조 제1항)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고 벌금을 병과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벌금 상한이 15억 원에서 65억 원으로 올랐고, 산업기술 해외유출 벌금은 최대 30억 원으로 올랐습니다. 고의적 침해의 손해배상은 법원이 정하는 배상액 상한이 손해액의 3배에서 5배로 확대됐습니다(자동 적용 아님). 해외유출 요건은 해외 사용 '목적' 입증에서 해외에서 사용될 것을 '알면서'도 처벌하는 것으로 완화됐습니다. 침해행위를 소개·알선·유인하는 브로커도 침해행위로 처벌 대상이 됐습니다. 산업부가 국가핵심기술 판정 신청을 통지할 수 있게 됐고, 불이행 시 과태료 대상입니다. '목적'에서 '인지'로의 요건 완화는 수사·입증 부담을 낮추는 실질적 변화입니다. 판정 신청 통지 제도는 "우리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인지 몰랐다"는 회색지대를 줄이는 장치입니다.
실무 체크리스트
순서대로 점검하면 이렇습니다.
- 보유 기술 판정 확인. 자사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첨단기술 등 고시 범위에 드는지 확인합니다. 국가핵심기술은 산업통상부 판정 신청 대상이며, 통지받으면 원칙적으로 30일 이내 서류 제출, 방치 시 과태료입니다. 산업발전법상 첨단기술은 별도의 '첨단기술·제품 확인' 제도가 있습니다. 이번 판결에서 보듯 확인서의 존재 여부와 시점이 형사 사건의 결론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 보유기관 등록. 국가핵심기술 해당 판정을 받는 등 법정 사유가 발생하면 30일 이내 보유기관 등록 신청 의무가 있습니다(2025년 개정으로 정비)
- 영업비밀 관리체계 점검. 목록 밖 기술의 안전망은 비밀관리성 입증입니다. 문서 등급·접근권한·반출 통제·퇴직자 절차를 살핍니다
- 수출·M&A 사전 검토. 국가 연구개발비를 지원받아 개발한 국가핵심기술의 수출은 사전 승인, 그 밖의 국가핵심기술은 사전 신고 대상입니다. 전략물자(수출통제) 절차와는 원칙적으로 별도 검토가 필요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상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보는 규정이 있는지도 함께 확인합니다
- 최신 고시 추적. 국가핵심기술·첨단기술 고시는 수시 개정됩니다. 이 글도 주요 개정 시 업데이트합니다
편집자 판단 — 법이 지켜주는 범위를 먼저 알라
제 판단으로는 이번 판결의 실무적 교훈은 "법이 지켜주는 범위를 먼저 알라"는 것입니다. 처벌 수위가 아무리 올라가도 목록·요건·시점의 구조를 모르면 보호를 설계할 수 없습니다. 고시 목록 대조와 비밀관리 체계 점검을 같은 표 위에 놓고 보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면책 조항을 덧붙입니다. 본 글은 제도의 구조 이해를 돕는 정보 제공 목적이며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판결 내용은 공개 보도를 기반으로 정리한 것이라 판결문 원문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개별 사안의 산업기술·영업비밀 해당 여부와 형사·민사 대응은 기술유출 사건을 다뤄 본 변호사 등 전문가와 함께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법령·고시는 국가법령정보센터 원문이 기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