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에서 연결로

첨단 패키징 로드맵을 추적하다 보면 승부처는 결국 '연산'에서 '연결'로 옮겨옵니다. 연결이 병목이 되는 순간, 광전(빛↔전기) 변환 지점을 칩에서 얼마나 가깝게 당겨올 것인가가 설계의 중심 질문이 됩니다.

왜 CPO인가 — 플러거블 방식의 세 가지 부담

AI 데이터센터에서 GPU·스위치 사이를 오가는 데이터가 폭증하면서, 광모듈을 장비 전면 패널에 꽂는 기존 플러거블 방식은 세 가지 부담이 커졌습니다. ① 전기 경로 — 칩에서 전면부 모듈까지 고속 전기 신호가 보드를 길게 지나야 해서, 속도가 올라갈수록 신호 손실과 이를 보정하는 회로의 전력 부담이 커집니다 ② 전력·냉각 — 브로드컴 발표 기준으로 기존 스위치 시스템에서 플러거블 광모듈이 시스템 전력의 약 절반을 차지합니다 ③ 밀도 — 전면 패널의 포트 공간·배선·냉각 제약으로 I/O를 늘리기 어려워집니다. 연결이 막히면 초고가 GPU가 데이터를 기다리며 노는 시간이 늘어나므로, 이는 곧 데이터센터 경제성 문제입니다.

CPO는 무엇이 다른가 — 변환 지점을 칩 옆으로

CPO는 광 엔진을 로직 칩(스위치 ASIC 등)과 같은 패키지 안에 통합합니다. 광 엔진은 빛의 통로를 반도체 공정으로 새긴 포토닉스 회로(PIC)와 이를 구동하는 전자 회로(EIC)로 구성됩니다. 전기→빛 변환이 칩 바로 옆에서 일어나므로 고속 전기 경로가 패키지 내부의 짧은 구간으로 줄어들고(실제 길이는 설계에 따라 다름), 그만큼 손실·보정·전력 부담이 감소합니다. 브로드컴은 이 방식으로 광 연결 전력을 플러거블 대비 70% 낮췄다고 발표했습니다. 참고로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 자체는 플러거블 모듈에도 널리 쓰입니다 — CPO는 그 기술의 여러 적용 방식 중 패키지 통합형에 해당합니다. 대가는 패키징 난도입니다: 광학 부품과 로직 칩의 정밀 정렬·본딩·검사가 필요해, 후공정이 전공정급 정밀도를 요구받게 됩니다.

플러거블과 CPO의 광전 변환 지점 비교 — 플러거블은 긴 보드 배선 후 전면부 변환, CPO는 패키지 안 광 엔진(PIC+EIC)에서 변환하고 레이저는 외부 광원 모듈로 분리
전기→빛 변환 지점의 이동 (ALBAKNOW 자체 제작, 브로드컴·TSMC·엔비디아 공식 발표 기준)

누가 언제부터 — 도입기에서 주류 전환으로

시간표는 기업별로 다릅니다. 브로드컴은 2024년 3월 업계 첫 51.2Tbps CPO 이더넷 스위치(Bailly)의 고객 공급을 발표하며 가장 먼저 제품화했습니다. TSMC는 2026년 4월 자체 광 엔진 COUPE를 기판에 통합하는 CPO 방식이 2026년 생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공식 발표했고, 이번 주 세미콘 타이완 2026 현장에서도 하반기 생산 계획 발언이 보도됐습니다(현장 보도 기준 — 생산 개시 실적과는 구분 필요). 엔비디아는 2026년 3월 광부품사 루멘텀·코히런트에 각 20억 달러(합계 40억 달러)를 투자하고 별도의 대규모 구매 약정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 차세대 네트워크 스위치의 광학화를 직접 챙기겠다는 신호입니다. 장비 쪽에서는 본딩 장비사 EVG가 CPO 제조의 핵심 과제(광학 부품 정밀 접합)를 겨냥한 본딩·나노임프린트 공정 포트폴리오를 발표했습니다(개발→양산 전환 지원 발표이며 특정 고객 수주 확정과는 구분). 세미콘 타이완 2026의 주요 의제 중 하나가 실리콘 포토닉스·CPO이고, 공식 전시관(Silicon Photonics Pavilion)도 운영됩니다.

밸류체인 지도 — 다섯 개의 역할

CPO 생태계는 역할이 갈립니다: 광원(레이저) → 광 엔진(PIC+EIC) → 패키징·광섬유 접속 → 검사·신뢰성 → 스위치 시스템 통합. 엔비디아 설계에서 레이저는 패키지 밖 전면에서 교체 가능한 외부 광원 모듈로 분리되는데, 이는 정비성(고장 부품 교체)을 확보하려는 구조적 선택입니다. 루멘텀·코히런트 투자가 광원 단을, TSMC COUPE·브로드컴 광 엔진이 엔진 단을, EVG류 장비가 접속·양산 단을 맡는 식으로 밸류체인의 칸이 채워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접점 — 공식 발표 기준

국내 기업들의 공개된 위치는 아래와 같고, 단계 구분이 중요합니다.

  • 삼성전자 — 2026년 8월 말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산업전에서 광 엔진을 패키지에 집적한 CPO 구조 목업 공개: 파운드리 공정·패키징 연계 솔루션으로 소개된 기술 전시 단계
  • SK하이닉스 — 2026년 8월 국제 공동연구진과 Nature Electronics에 CPO 기술 로드맵 발표. 광 연결을 메모리 인터페이스까지 확장해 여러 AI 가속기가 대규모 메모리 풀을 공유하는 구상: 연구·로드맵 단계 (HBM 이후 메모리-광의 접점)
  • 후공정 장비·부품 — 정밀 본딩·정렬·검사 수요는 하이브리드 본딩에 이어 국내 장비 업계가 노려볼 구간 (공개 발표 기준의 일반 전망)

편집자 판단 — 속도를 정하는 건 성능이 아니다

제 판단으로는 전력 절감이나 대역폭 같은 성능 수치보다 패키징 수율과 정비 비용이 실제 상용화 속도를 결정할 것입니다. 레이저를 탈부착 가능한 외부 모듈로 분리한 엔비디아의 설계가 이를 보여줍니다 — 광학 부품을 패키지에 집적하는 순간, '부품 하나가 고장 났을 때 패키지 전체를 버려야 하는가'라는 데이터센터 경제학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한편 CPO에는 광학 접합·도파로용 소재 등 재료 각론도 존재하지만, 이 글은 공개된 1차 자료가 충분한 구조·플레이어·시간표까지만 다룹니다.

지도를 읽는 법

CPO는 엔비디아 로드맵 4축 중 '광연결 활용 확대' 축의 실행편입니다. 발표를 볼 때는 ① 주체와 역할(광원·엔진·패키징·시스템 중 어디인가) ② 단계 구분(제품 공급·생산 계획·기술 전시·연구 로드맵) ③ 수율·신뢰성 신호 세 가지를 추적하면 됩니다. 이 글은 새 공식 발표가 나오면 업데이트되는 기준 글이며, 주가·투자 판단이 아닌 기술·수요 구조 해설입니다.